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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일반] ‘최장신’ 여자농구 前국가대표 선수 김영희, “나에게 농구는 인생이다”…①

[농구일반] ‘최장신’ 여자농구 前국가대표 선수 김영희, “나에게 농구는 인생이다”…①

  • 기자명 윤초화
  • 입력 2012.06.06 10:52
  • 수정 2014.11.1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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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농구는 인생이다” 농구를 그만둔 지 수년이 흘렀지만 농구에 대한 그녀의 애정은 여전했다.

여자농구 前국가대표 센터 김영희 씨는 205cm의 신장으로 그 누구보다 화려하게 한국여자농구 무대에 등장했다. 1983-1984점보시리즈에서는 한국화장품의 주전 센터로 활약하며 조흥은행과의 경기에서 당시 한 경기 최다 득점인 52점을 기록했다. 당시 최고 센터인 박찬숙의 유일한 대항마로 언급되기 충분했다.

국내무대서 활약 덕분에 그녀는 84년 LA올림픽 국가대표로 발탁됐고 국내최초 구기종목 메달 획득의 주역이 됐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그녀의 농구인생은 88년 서울 올림픽을 열심히 준비하던 중 산산조각 났다.

87년 대표팀 훈련 중 갑작스레 쓰러진 김영희 씨. 그녀는 뇌에서 발견된 종양제거를 위해 수술을 받았고 그 후 다시는 코트에 발을 디딜 수 없었고 2002년 ‘거인증’이라 불리는 말단비대증 판정을 받았다. 화려했던 농구스타에서 한 순간 추락했지만 그녀는 긍정적인 사고로 병을 이겨내고 있었다.
 

- 현재 몸 상태는

“요즘도 많이 아프다. 약물치료로 붓기는 어느 정도 빠졌지만 심장이 안 좋아졌다”
 

- 봉사활동을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 요즘도 자주 다니나.

“몸이 안 좋아서 조금 뜸하다. 심장이 안 좋아 병원 다니느라고 자주 못 갔다. 한 달 20만원의 보조금을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면서 돈을 모았다. 모은 돈으로 음료수, 빵, 과자와 경기장에서 받은 농구공을 장애인들에게 가져가면 좋아한다. 주변 분들도 좋은 일은 같이 해야 한다며 봉사활동에 참여하셨다. 중국집에서 자장면 70인분을 준비해서 무료로 제공하니 장애인들이 정말 좋아했다”
 

- 봉사활동으로 느낀 점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많이 깨우쳤다. 내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다. ‘저 사람들은 얼마나 아프고 외롭겠느냐’ 라는 생각을 했다”
 

- 농구를 처음시작하게 된 계기는.

“키가 컸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이미 170cm가 넘었다. 그때 학교에서 배구팀에 영입을 했다. 배구를 하다가 부산 동주여상에서 농구를 시작했다. 감독님이 ‘너는 서서 그물망에 공만 집어넣으면 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믿고 훈련을 시작했는데 계속 뛰기만 해서 의아했다”
 

- 큰 키로 수많은 고등학교의 러브콜을 받았다고 들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키 때문에 농구팀뿐만 아니라 실업 배구팀에서도 제의를 받았다. 월급을 받으며 배구팀에서 1년 동안 훈련했고 배구로 유명한 마산 제일여고 입학을 준비했다. 모 잡지에서 나의 훈련 모습을 취재한 기사를 보고 동주여상 감독님이 다시 학교로 나를 데려갔다. 당시 한국화장품이 부산으로 전지훈련을 자주 와 큰 나를 보고 스카우트해 동주여상과 한국화장품이 연고를 맺었다. 한국화장품에서는 나를 서울 숭의여고에 입학시켰고 동주여상 감독님은 내가 또 없어지니까 집에 찾아오고 난리도 아니었다”
 

- 박찬숙 선수와 라이벌로 자주 언급됐다.

“1월1일이면 언론에서 항상 우리 둘을 경쟁시켰다. ‘‘노련미’의 박찬숙이냐 ‘패기’의 김영희냐‘ 이런 기사가 많이 나왔다. 이기면 한 해 동안 떵떵거렸고 지면 기가 죽어 다녔다. 나는 별명이 ‘코끼리’였다. 관중석에서 ‘코끼리’라는 소리가 항상 들렸다. 박찬숙 선배는 워낙 잘했고 나는 키가 컸다. 항상 라이벌로 맞붙다보니 대표팀에서 박찬숙 선배랑 만나면 선배가 날 자주 부려먹었다”
 

- 기억나는 경기가 있다면.

“국제대회는 역시 84년 LA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던 경기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국내는 점보시리즈에서 한 경기 52득점을 기록한 경기가 기억에 남고 그 당시 5관왕에 올랐다. 인기상, 득점상, 리바운드상, 자유투상, 최우수선수상을 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 87년 훈련 중 갑자기 코트를 떠났다. 그 당시 심정은 어땠나.

“88년 서울올림픽을 집에서 보면서 너무 속상했다. 괴로운 마음에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밤에는 배가 아파서 힘들어 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렇게 20년이 지났다. 용기를 내어 밖을 나가도 주위의 시선에 5분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유일한 친구였던 어머니가 1998년 세상을 떠나시면서 생각이 변하기 시작했다. 항상 어머니는 ‘니가 늙으면 누가 널 부축해주겠니. 먼저 베풀어라. 그러면 사람들이 널 부축해 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고 생각이 변하자 날 피하던 사람들도 내게 먼저 다가왔다”
 

- 과거로 돌아간다면 농구와 배구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아마도 농구를 할 것 같다. 아직도 경기장에 가면 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지난 시즌 부천경기장에서 김정은을 만나 ‘정은아 너 힘들면 나와 내가 뛸게’라고 말할 정도로 아직도 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꿈은 없다. 처음 병원에서 병을 발견하고 딱 10년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지금 무릎에 거의 힘을 쓸 수 없다. 바닥에 앉았다 일어날 수 도 없고 계단을 내려갈 때도 난간을 잡고 내려간다. 힘만 더 생기면 후배들도 가르치고 싶지만 어려울 것 같다”
 

- 김영희에게 ‘농구’란 무엇인가.

“인생이다. 훈련과정은 너무나 견디기 힘들고  수도 없이 때려 치우고 싶지만 우승했을 때 짜릿함과 그로인한 감동의 눈물은 훈련의 고난과 역경을 잊게 한다. 인생도 같지 않나. 힘들 때도 있지만 좋고 기쁠 때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은 잊는다”

부천 = 윤초화 기자 / yoon23@onst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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