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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농구대회의 기억

남북통일농구대회의 기억

  • 기자명 임정혁
  • 입력 2013.05.02 11:01
  • 수정 2014.11.16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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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남북 관계가 최악이다. 최후의 소통창구라는 개성공단도 문을 닫았다. 일련의 사태들을 보면서 남북한 농구 교류를 생각했다. "그런 시절도 있었지"라고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

남북통일농구는 1999년과 2003년에 열렸다. 정주영 회장의 현대와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의 민간교류 차원에서 이룬 평화적 성과였다. 1991년 세계 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 남북 단일팀 구성 이후 남북 스포츠 교류였다는 점에 의의가 있었다.

1999년 9월 첫 대회가 평양에서 1차로 열렸고 2차는 서울에서 12월에 진행됐다. 현대 계열 남녀 농구팀은 북한선수단과 혼합경기 및 단일경기를 치렀다.

평양대회는 9월28일과 29일 이틀 동안 열렸다. 첫날인 28일에는 남한 선수 6명 북한선수 6명이 한 팀을 이뤘다. 이렇게 선수를 섞어 두 팀을 만들었고 각각 '단결팀'과 '단합팀'으로 팀명을 붙여 단일 경기를 진행했다. 친선 의미가 강했고 수비도 설렁설렁했다. 농구 내적인 것 보다는 정치 같은 외부적 상황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강했다.

29일에는 남북간 대결의 장이 펼쳐졌다. 남자는 현대-기아 연합팀이 참여했고 여자는 현대산업개발이 나섰다. 남북간 그래도 자존심이 걸려있다 보니 전날 보다 수비가 강했다. 결과는 남녀 모두 북한에 패했다. 남자가 71-102로 졌고 여자가 93-95로 졌다.

서울에서 열린 2차 대회는 12월 23일~24일에 열렸다. 역시 첫째 날인 23일에는 혼합팀으로 친목을 다졌다.

워밍업을 마친 남북은 둘째 날인 24일 화려하게 기량을 꽃피웠다. 남자 경기에서는 현대-기아 연합팀이 71-86으로 북한 우레팀에 졌다. 여자 경기에서는 현대산업개발이 북한 회오리팀을 86-84로 이겼다.

남북통일농구대회에서 화두는 리명훈이었다. 235cm에 달하는 그의 신장은 큰 화제거리가 됐다. 팔을 쭉 뻗고 발끝을 들면 거의 림에 닿았다. 덩크슛이 골밑슛 보다 쉬웠다. 특히 현대 단신슈터 조성원과 같이 찍힌 사진이 많았다. 인간장대가 걸어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프타임과 남녀 경기 사이에서는 평양교예단이 묘기를 보였다. 까까머리였던 나는 할아버지와 이 경기를 봤는데 할아버지는 "허허. 그것 참 옛날 서커스단 같구나"라고 그 옛날을 회상했다. 아버지는 "우리가 서장훈을 국보급센터라고 하니까 저쪽에서는 리명훈을 민족의 보물이라고 한다네"하고 농을 던졌다.

서울 2차 대회 둘째 날 남북대결에서 한국은 강동희 이상민 더블가드를 내세웠다. 북한은 이명훈과 박천종이 주축으로 나섰다. 이명훈은 28득점 20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박천종은 31득점 6어시스트 3스틸을 올렸다.

결과는 남자부 현대가 71-86으로 북한 우뢰에 졌다. 여자부는 현대산업개발이 86-84로 회오리에 이겼다.
 

이후 남북통일농구대회는 4년간 열리지 못하다가 2003년 10월 평양 정주영 체육관 개관식을 기념해 남한팀만 한차례 방북하고 끝났다.

당시 신문기사를 살펴보면 잠실체육관에는 1만2000여명의 관중이 꽉 들어찼다. 표 구하기가 어렵다는 보도도 많았다.

특히 해설을 맡았던 박인규 위원은 "2m35의 세계 최장신 이명훈이 센터에 자리 잡고 서장훈이 파워포워드를 맡으면 이들 더블 포스트의 파괴력은 세계 최고수준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남북이 힘을 합했을 때의 농구 전력을 추측해 남북한의 화합 분위기를 환기한 것이다.

현대를 이끌고 대회에 참가했던 신선우 감독은 "드림팀이 구성되면 아시아 정상은 물론 올림픽 무대에서도 8강이 겨루는 본선에 거뜬히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며 말을 보탰다.

현재 남북통일농구대회의 의지가 완전히 꺾인 것은 아니다. 한선교 총재는 2011년에 "남북화합에 농구가 역할을 하고 싶다"고 언론에 말했다. 김정은이 농구 마니아인 것과 비정치적인 농구의 활용도를 언급했다. 남북관계 개선에 농구가 역할을 하길 바란다는 취지를 밝혔다. 당시 한 총재가 시기에 대해 2013년쯤 될 것이라 예상했다.

최근 남북 갈등을 지켜보며 나는 자꾸만 그때가 생각난다. 까까머리의 내가 느낀 설렘과 중년의 아버지가 느낀한 감정과 노년의 할아버지가 느낀 회상은 어땠을까 추측해봤다.

시대와 세대를 넘어 농구가 외부든 내부든 집중시선을 받았던 때가 그립다.

[사진. KBL, 뉴시스]

임정혁 객원기자 / sports@onst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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