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 Nostalgia] ‘뉴캐슬의 득점기계’ 앨런 시어러 – 200
[EPL Nostalgia] ‘뉴캐슬의 득점기계’ 앨런 시어러 – 200
  • 이형주 기자
  • 승인 2021.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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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캐슬 유나이티드 공격수 앨런 시어러. 사진|뉴캐슬 유나이티드 공식 SNS
뉴캐슬 유나이티드 공격수 앨런 시어러. 사진|뉴캐슬 유나이티드 공식 SNS

[STN스포츠] 이형주 기자 = Nostalgia, 과거에 대한 향수란 뜻이다.

지금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무대에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 원동력은 이전의 선수들이 우수한 플레이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EPL을 발전시켜 온 것에서 나온다. 이에 EPL Nostalgia에선 연재물로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들을 재조명해본다. [편집자주]

-[이형주의 EPL Nostalgia], 200번째 이야기: ‘뉴캐슬의 득점기계’ 앨런 시어러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사랑했던 득점기계 같은 선수가 있다.

뉴캐슬은 8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 계열 국부 펀드(PIF, Public Investment Fund)가 주도하고, PCP Capital Partners와 RB Sports & Media가 투자그룹으로 참여하는 구단 인수가 완료됐다"라고 알렸다. 

PIF는 이제 공격적으로 선수 영입을 추진할 전망인데, 그와 더불어 구단의 레전드들을 홍보대사 등으로 초빙하며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 자신들이 역사와 전통을 가진 구단임을 알리고 활용하기 위해서다. PIF는 역시나 팀의 최고 레전드이자 EPL 최고의 득점기계인 이 선수에게 먼저 제의를 할 것으로 전해졌다. 

1970년 뉴캐슬의 고스포스에서 태어난 시어러는 어릴 때부터 축구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축구 선수에 대한 꿈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여느 잉글랜드 아이들이 그러하듯 어린 시어러도 응원하는 팀과 동경하는 선수가 있었는데, 응원하는 팀은 고향팀인 뉴캐슬 유나이티드였으며 그 시절 동경하던 선수는 뉴캐슬의 득점기계 케빈 키건이었다.

시어러는 자신이 동경하는 꿈을 실현시킬 수 있을 만큼 축구선수로서 재능이 있었고 그는 당연히 뉴캐슬 유소년 팀에 지원한다. 그러나 그 당시, 공격 자원보다는 유망한 수비 자원을 물색하고 있던 뉴캐슬의 팀 사정 속에서 시어러는 결국 뉴캐슬 입단 테스트에서 탈락하게 됐다.

하지만, 충분히 재능이 있었던 시어러는 사우스햄튼에 스카웃돼 그 곳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한다. 사우스햄튼 유스 팀에서 어린 시절 실력을 키울 수 있던 것은 어찌보면 행운이었다. 사우스햄튼 유스는 매튜 르 티시에, 웨인 브릿지, 가레스 베일, 케빈 필립스, 시오 월콧, 옥슬레이드 체임벌린, 애덤 랄라나, 칼럼 챔버스, 루크 쇼, 제임스 워드 프라우스 등 그 시기는 물론 그 이후로도 언제나 뛰어난 선수들을 계속해서 배출해 내는 좋은 유스 팀이기 때문이다.

유소년 팀에서 경력을 쌓고 마침내 1군 무대에 데뷔하게 된 시어러는 좋은 의미로 사고를 쳤다. 첫 1군 선발 데뷔 무대에서 아스날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지미 그리브스의 30년 된 최소 경기 해트트릭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시어러는 1991/92 시즌, 13골을 득점하면서 두 자리 수 득점을 기록했다. 1991/92 시즌을 마친 뒤, 시어러는 그 동안의 활약을 인정받아 유로 92에서 참가하게 되고 조별리그 두 번째 경기 덴마크 전에서는 선발 출장을 하게 된다. 잉글랜드는 1조에서 스웨덴, 덴마크, 프랑스와 4강 진출을 놓고 다투다 2무 1패 조 최하위로 조별 리그에서 비록 탈락했지만, 어린 시어러에게 값진 경험이었다.

이렇게 1991/92 시즌이 끝나고 유로 92가 폐막했을 때 시어러의 주가는 치솟아 있었다. 잉글랜드 국적을 지닌 정통 스트라이커가 1군 무대에서 두 자리 수 득점을 기록하면서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대표팀에도 승선해 어느 정도 밝은 미래가 예상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블랙번 등의 클럽에서 영입 제의를 받은 시어러는 결국 경기를 더 많이 뛸 수 있고, 360만 파운드라는 당시 잉글랜드 최고 이적료를 제의한 블랙번으로 향하게 됐다.

너무 오버페이를 한 것 아니냐란 우려도 있었지만 시어러는 실력으로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킨다. 1992/93시즌 모든 대회를 통틀어 26경기에 출전해, 22골을 득점하며 예열을 시작한 시어러는 그 다음 시즌부터인 1993/94, 1994/95, 1995/96시즌 리그에서만 31골, 34골, 31골을 기록하는 엄청난 골 행진을 보여주었다.

이 세 시즌 중 단연 백미는 1994/95 시즌이었는데 시어러는 모든 대회를 합쳐 49경기에서 37골을 득점했다. 그 중 리그골이 34득점이었는데 당시는 프리미어리그 팀이 22경기라 4경기를 더 치루기는 했다. 하지만 전 경기에 출장하는 꾸준함과 지금까지 프리미어리그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게 됐다.

시어러는 득점 기록이 훌륭했을뿐만 아니라 투톱을 이뤘던 동료 공격수 크리스 서튼과의 호흡도 좋았다. SAS라고 불린 이 듀오 덕에 블랙번은 80득점으로 리그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 이를 통해 무려 81년 만에 1부리그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는 감격적인 역사를 만들었다.

블랙번의 EPL 우승이 확정된 뒤 기뻐하는 시어러. 사진|블랙번 TV
블랙번의 EPL 우승이 확정된 뒤 기뻐하는 시어러. 사진|블랙번 TV

이 엄청난 스트라이커의 득점행진이 이제 국가대표팀의 국제 무대를 겨냥하고 있었다. 94월드컵 노르웨이와 네덜란드에 이어 3위를 기록하며, 충격적인 본선 진출 실패를 경험했던 잉글랜드와 시어러는 자존심 회복을 노리고 있었다.

유로 96의 스타로 마티아스 잠머, 폴 개스코인 등 여러 선수를 꼽을 수 있지만 시어러도 반드시 포함되야 하는 선수였다. 시어러는 8강 전 스페인 전을 제외하고 출전한 경기에서 모두 골을 넣으며, 5골로 대회 득점왕에 올랐다. 4강 전에서 독일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한 것은 시어러에게 너무도 아쉬운 대목이었다.

잉글랜드로 돌아온 시어러는 일생 일대의 선택을 앞두고 있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강력하게 그를 원하고 있었다. 최고의 명장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특히나 열정적이었다.

사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시어러를 원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인데 처음 사우스햄튼에서 두 자리 수 득점을 했을 때도 그렇고 블랙번 행 이전 거취를 두고 고민할 때, 그리고 지금이었다. 그 딜은 무난히 성사될 것처럼 보여졌고 시어러가 별 장애물 없이 맨유로 향할 것이 확정적으로 보였다.

시어러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의 면접 후에 그가 맨유와의 계약에 거의 근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직후 시어러에게 변수가 찾아왔다.

그가 어릴 적부터 동경하던 고향팀 뉴캐슬로부터의 제의였다. 결국 블랙번은 맨유와 뉴캐슬이 제시한 이적료에 모두 동의하고 선택은 선수의 몫이 된다.

사실, 고향팀이라는 이점을 빼곤 모든 면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앞서있는 상황이었다. 그 시기 리그 성적도 그러했고, 지금까지 획득한 트로피의 개수를 비롯한 팀 역사, 현 전력, 앞으로의 구단 발전 가능성 등 모든 측면에서 그 당시 맨유가 뉴캐슬에 앞서 있었다.

마지막 순간 케빈 키건이 그를 설득하고 결국 시어러는 1996년 당시 세계 최고의 이적료로 그의 고향팀 뉴캐슬에 입성했다. 그의 꿈이 이뤄진 것이다.

시어러가 헌신한 뉴캐슬. 그 홈구장 세인트 제임스 파크. 사진|이형주 기자(영국 뉴캐슬/세인트 제임스 파크)
시어러가 헌신한 뉴캐슬. 그 홈구장 세인트 제임스 파크. 사진|이형주 기자(영국 뉴캐슬/세인트 제임스 파크)

시어러는 뉴캐슬로 이적한 뒤에도 모든 대회 40경기에 출전해 28골을 득점하는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맨유의 타이틀 수성을 마지막까지 어렵게 만든다. 

첫 시즌 좋은 활약을 보이고 맞은 1997/98 시즌, 그 시기는 시어러의 커리어에 있어 가장 암울한 시즌이었다. 부상을 겪으며 시즌 내내 힘들어하던 시어러는 결국 리그에서 17경기 2골이라는 지표가 보여주듯이 좋지 못한 활약을 했다. 그리고 1998년 월드컵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시어러의 첫 월드컵이자 마지막 월드컵이었던 1998년 월드컵에서 잉글랜드는 루마니아, 콜롬비아, 튀니지와 G조에 배정됐다. 시어러는 조별리그 3경기 모두 풀타임 소화하며 좋은 활약을 보이고 특히 첫 경기 튀니지 전에서 골을 기록하며, 잉글랜드의 핵심임을 입증하고 잉글랜드는 16강에 진출하게 됐다.

16강에서 잉글랜드는 포클랜드 전쟁으로 양국의 감정이 고조된 상황에서 아르헨티나와 만나게 되는데 각 국을 대표하는 공격수 시어러와 가브리엘 바티스투타가 페널티킥 득점을 하나씩 나눠 가지며 마이클 오웬, 하비에르 사네티가 각 국에 한 골씩을 추가하면서 2-2까지 경기가 흐른다. 하지만, 디에고 시메오네와의 마찰에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한 데이빗 베컴의 발길질에 대해 심판이 퇴장을 선언하면서 잉글랜드는 수세에 몰리게 됐다.

2-2로 연장전까지의 경기를 잘 치러낸 잉글랜드였지만, 승부차기에서 패하면서 잉글랜드의 월드컵도 끝이난다. 시어러 입장에서는 대단히 아쉬운 대회였다. 시어러는 여기서 실망하지 않고 유로 2000에 후배들을 이끌고 타이틀 획득을 노리지만, 유로 2000에서의 잉글랜드는 더 좋지 못 했다.

노장으로서 이번 대회에서도 독일 전 결승골과 루마니아전 페널티킥 득점을 하며 언제나처럼 제 몫을 했던 시어러지만 잉글랜드는 포르투갈, 루마니아, 독일과 속했던 A조에서 1승 2패, 조 3위를 기록하며 조별리그 탈락에 그쳤다. 이제는 클럽에 전념해야 될 때라고 본인이 판단하고 유로 2000을 끝으로 그는 길었던 국가대표팀 생활을 마무리했다.

다시 클럽 이야기로 돌아와서 1998년 월드컵이 끝난 뒤 시어러는 뉴캐슬에서도 좋지 못 한 모습을 보였다. 루드 굴리트 감독과 뉴캐슬은 잘 맞지 않았으며, 시어러 뿐만 아니라 뉴캐슬 전체가 슬럼프를 보이며 좋지 못한 시기를 보냈다.

이 때의 뉴캐슬을 구하기 위해 나타난 감독이 바비 롭슨이었다. 잦은 부상으로 스피드가 전성기에 비해 떨어져 있던 시어러를 바비 롭슨은 타깃 스트라이커로 활용하고 이 결정은 주효했다. 2001/02시즌 시어러가 37경기에서 23골을 기록한 것이다. 

예전과 같은 폭발적인 스피드는 아니었지만, 정확한 위치선정과 빨랫줄 같은 슈팅은 그를 여전히 리그 최정상급 공격수로 평가받게 만들었다. 그런 시어러의 득점력과 게리 스피드, 니코스 다비자스, 로랑 로베르, 크레이그 벨라미, 로베르토 솔라노 등의 활약이 어우러진 덕에 뉴캐슬은 다시 한 번 챔피언스리그 무대에 복귀 할 수 있었다.

2002년 4월 찰튼전에서는 프리미어리그 200골을 달성했고 2003년에는 프리미어리그 10주년 국내 최우수 선수를 수상하는 등 계속된 영예를 안았다. 이후 2004/05시즌까지 준수한 활약을 펼치던 시어러는 은퇴를 고민하지만 팀을 위해 1시즌 만 더 뛰기로 결정하고 05/06 시즌을 소화한 뒤 은퇴를 선언했다.

세인트 제임스 파크의 시어러 동상. 사진|이형주 기자(영국 뉴캐슬/세인트 제임스 파크)
세인트 제임스 파크의 시어러 동상. 사진|이형주 기자(영국 뉴캐슬/세인트 제임스 파크)

리그 260골로 현재도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다골 순위 1위를 랭크하고 있는 시어러가 유니폼을 벗은 것이다. 시어러는 은퇴 이후 뉴캐슬 임시 감독 등의 직책을 맡다 현재는 BBC의 패널로 방송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사우디 국부펀드에 인수된 뉴캐슬이 공격적인 홍보 활동을 할 것이 유력한 상황에서 팀과 시어러 간의 유대가 더 강화될 전망이다. 

1996/97시즌 레스터전에서 슈팅하는 시어러. 사진|NUTV
1996/97시즌 레스터전에서 슈팅하는 시어러. 사진|NUTV

◇EPL 최고의 순간

1996/1997시즌 25라운드에서 뉴캐슬과 레스터 시티가 맞붙었다. 이날 뉴캐슬은 후반 32분까지 1-3으로 밀리며 패색이 짙었다. 하지만 시어러가 해트트릭을 폭발시키며 4-3 역전을 만드는 괴력을 보였고 결국 뉴캐슬이 승리했다. 

◇플레이 스타일

언제든, 어디서든, 어떤 자세든 득점을 올릴 수 있었던 득점 기계. 현 EPL 역대 최고 득점자(260골)라는 타이틀이 이를 증명한다. 나이가 들면서 운동능력이 떨어진 이후에는 스타일을 바꿔 살아남는 등 변화에 대한 적응도 완벽에 가까운 선수였다. 

◇프로필

이름 – 앨런 시어러 

국적 – 영국(*잉글랜드)

생년월일 - 1970년 8월 13일

신장 및 체중 – 180cm, 76kg

포지션 – 스트라이커

국가대표 기록 – 63경기 30골

EPL 기록 – 441경기 260골

◇참고 영상 및 자료

프리미어리그 1992/93시즌~2005/06시즌 공식 리뷰 비디오

블랙번 로버스 공식 홈페이지

뉴캐슬 유나이티드 공식 홈페이지

<트랜스퍼 마켓> - 선수 소개란

<뉴캐슬 크로니클> - 'Pieces falling out' - Alan Shearer's Newcastle transfer did not just hurt Manchester United

<뉴캐슬 크로니클> - Alan Shearer opens up on legacy of Newcastle blow that coincided with Dalglish's 'smack in face'

<텔레그래프> - Alan Shearer set for role at Saudi-owned Newcastle United

<맨유 공식 홈페이지> - WOULD OLE HAVE SIGNED IF SHEARER BECAME A RED?

<가디언> - When Alan Shearer scored a hat-trick on his full debut – while on £35 a week

STN스포츠=이형주 기자

total87910@stnspor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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